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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일대기로 본 로버트 카파의 생애(Robert Capa)

2013. 10. 1.

로버트 카파의 삶에 대해서 연도별로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출생부터 사망까지 로버트 카파의 나이를 생각해보면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보도사진 작가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세계가 전쟁의 광기에 휩싸인 시기, 전쟁의 한가운데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종군기자로서의 삶, 그리고 전쟁속에서도 애틋한 사랑을 했던 카파의 일생을 보면서, 지금 우리 시대의 평화에 대해서도 다시 되돌아 보게 됩니다.


로버트 카파(Robert Capa, 1913년 10월 22일 ~ 1954년 5월 25일)


1913년, 부다페스트 출생(10월 22일)

1931년, 18세 유태인 탄압을 피해서 독일로 이주하게 됨

1932년, 19세 베를린에 있는 사진 에이전시 DEPHOTO 암실조수로 근무 (사진가 사이먼구트만)

1935년, 20세 로버트카파로 이름을 바꾸고, 보도 사진가로 활동을 시작함

1936년, 23세 스페인내전 촬영, 여류사진작가이자 카파의 첫번째 애인인 게르다 타로와 함께 스페인으로 향함, 그 해 1936년 9월 5일, 스페인 내전중에 코르도바 전방에서 "쓰러지는 병사"를 촬영하였다.

1937년, 24세 1937년 7월에 카파는 파리로 가 있게 되는데, 이 때 스페인에서 홀로남아 취재중이던 게르다는 공화파측을 촬영하던 도중, 후퇴하던 탱크에 깔려 사망하게 된다. 게르다는 죽음직전까지 카메라와 필름이 무사한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카파는 이 사건으로 인해 너무나 괴로워 했다고 하네요. 아래 사진이 로버트 카파와 그의 첫번째 연인 게르다 타로인데, 타로가 죽기 2년전에 파리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DSC_3608
DSC_3608 by ElisaLovelyBetta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1938년, 25세 카파는 1937년에 시작된 중일전쟁에서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전쟁상황을 기록하기 위해 중국에서 촬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 "4억의 민중"에 참여하기로 합니다. 이러한 중국에서의 생활동안, 중국 각지의 전쟁 일상들을 기록하여 라이프지에 사진을 보내면서 생활비를 마련하여 생활을 하게 됩니다. 특히 일본군의 히로히토 천왕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한 중국에 대한 대대적인 폭격으로 인해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된 참상을 사진을 담아내어, 고통스런 전쟁에 대한 이미지를 남기게 됩니다. 이 시기동안, 게르다 타로를 잃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1944년, 31세 로버트 카파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참여합니다. 1944년 6월 6일, 제16보병사단 병사들과 함께, 군인들이 프랑스 노르망디 해변에 상륙하는 장면을 찍었는데요, 상륙작전에서 가장먼저 부대와 함께 내려서 빗발치는 총알 속에서 목숨을 걸고 사진을 촬영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죽어나가고 있는 지옥같은 환경속에서 죽음의 공포아래 찍은 사진은 2차 세계대전 중 촬영된 보도사진중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촛점이 맞지않고, 사진자체도 많이 흔들려 있지만, 이러한 사진 자체가 전쟁상황의 긴박감을 그대로 전달해 주는 효과를 주고 있습니다. 


D-Day: June 6, 1944: Allied Invasion of Normandy [photo by Robert Capa]
D-Day: June 6, 1944: Allied Invasion of Normandy [photo by Robert Capa] by Templar1307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이 때 카파는 전쟁의 참상을 찍은 3통의 사진을 런던 라이프사로 보냈는데, 필름 현상기사의 실수로 인해 필름 대부분을 못쓰게 되어버립니다. 불행중 다행으로 11장의 사진만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이와 같은 종군 취재 활동을 통해 로버트 카파는 이제 전설적인 보도사진작가가 됩니다.



1945년, 32세 미군부대와 함께 독일 라이프치히로 이동, 라이프치히 해방운동을 취재, 이 때는 전쟁이 거의 끝나가던 시기로 독일군들이 최후의 저항을 하던 때였습니다. 한 높은 아파트 꼭대기 층에서, 전쟁을 마무리하는 사진으로 생각하고 기관총을 장전하던 병사를 찍으로는 찰나에,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맞아 쓰러진 모습을 촬영하게 됩니다. 카파는 이 순간을 2차 세계대전중 가장 가슴아팠던 순간으로 기억한다고 합니다. 전쟁의 비통함을 가장 진하게 느끼게 해주는 사진이라고 합니다. 한편 이 시기 파리에서 잉그리드 버그만을 만나 연애를 시작하게 됩니다.


1946년, 33세 잉그리드 버그만의 제의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작업을 시작하게 되지만, 상업적인 풍토에 질려 그만두게 됩니다. 이 때 잉그리드 버그만이 카파에게 청혼을 했으나, 카파는 계속 떠돌아 다녀야 하는 자신의 직업때문에 청혼을 거절하게 됩니다. 


1947년, 34세 동료인,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침 시모어, 조지 로저와 함께 사진 에이전시인 매그넘 포토스를 설립하게 됩니다. 매그넘 포토스는 언론의 요구에 따라 사진을 직기보다 사진 작가의 개성을 반영하여 독창적인 시선을 선보이려고 하였습니다. 매그넘 결성 후 그 첫번째 프로젝트로 세계를 각자 나눠서 촬영하기로 하였고 카파는 모스크바로 향하게 됩니다. 


1948년, 35세 중동의 이스라엘 독립전쟁이 발발하고 카파는 텔 아비브로 가서 그 곳의 전쟁 상황을 촬영하게 됩니다. 이 해 여름, 카파는 프랑스로 건너가서 프랑스 골프 주앙 해변에 있는 피카소의 별장에서 피카소와 피카소의 연인 프랑수아 질로를 촬영하게 됩니다.


1949년, 36세 이 때, 소설가인 어윈 쇼와 함께 1년동안 생활하면서, "이스라엘 보고서"라는 책을 만들게 됩니다. 계속되는 전시 촬영으로 인해 휴식이 필요하던 피카소는 이 해, 여름 니스 인근 시미스에 있는 마티스의 별장을 찾게 됩니다. 이 곳에서 마티스의 작업 모습을 기록으로 남기게 됩니다.

 

1951년, 38세 매그넘 포토스의 회장으로 취임합니다.


1954년, 41세 인도차이나 전쟁에 종군기자로 참여하게 됩니다. 이 때, 프랑스 소대와 함께, 전장을 이동하던 중, 군인들의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다가 발을 옮겨 딛는 중에 ,지뢰를 밟아 사망하게 됩니다. 마지막까지 카메라를 꼭 쥐고 있었다고 하네요.



by Kikasz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마지막까지 전쟁과 함께하다가, 사진을 찍으려다 죽은 로버트 카파, 그 삶의 종적을 쫓아가 보면서, 불행한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의 기록과, 그 시대의 기록이 주는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었던 종군 보도사진가의 삶, 그리고 죽음을 무릅쓰고, 전쟁의 실상을 전하려는 사진가로서의 사명과 프로의식은 지금 내 삶에서 내가 어떤 자세로 삶을 대하고 있는지 되집어 보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거친 격랑의 시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전쟁의 시대를 사진으로 담아낸 로버트 카파, 이제 그는 보도사진의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연도별 일대기로 본 로버트 카파의 생애(Robert Capa)